첨알한 명단과 月日을 기재하고 있는데 祗謁ㆍ齋謁ㆍ來謁ㆍ謁ㆍ敬謁 등으로 표현되어 있으며 과거에 합격한 뒤 참배한 新恩祗謁者도 보인다. 4. 其他文書 1) 新安朱夫子 기미(1799)년 12월 29일 朱夫子位牌 移安時의 大祝ㆍ奉香ㆍ奉爐ㆍ奉幀의 명단과 祗謁(배알)者의 명단을 기재하였다.書齋畓은 本縣에 3군데에 있었는데 炊飯朔價ㆍ負木과 防風ㆍ養士의 용도로 쓰였고 山淸 中平員의 전답은 齋舍修理용이었다. 윤시영은 문과에 급제한 후 중앙에서는 承政院, 承文院 弘文館, 秘書院, 中樞院 등에 소속되어 있었으며, 지방에서는 兩湖宣撫使從事官, 扶安縣監, 咸興按覈使, 洪州郡守 洪州監浦等地宣諭使 등을 역임하였다.

이 문서군에서 사료로서 주목할 만한 자료는 윤시영이 ① 갑오년(1894) 扶安縣監, ② 임인년(1902) 咸興按覈使, ③ 병오년(1906) 洪州郡守兼洪州監浦等地宣諭使 등을 역임한 것과 관련된 자료들이다. 󰋪 청주향교 소장 자료는 97건 7,015장을 조사하였다. 이처럼 단성 강루리 신안서사 소장 고문서는 조선후기 사회변동에 대응하여 향촌 사회 내에서 자신들의 입지를 높이고 가문을 지켜나간 사대부들의 현실대응의식을 보여주는 중요한 자료이다. 충청북도 보은은 동학농민운동에서 중요한 지역이다. 부산오피 점에서 이번 사업을 통해 대표적인 불교계 근대학교 중 하나인 범어사가 개설, 운영한 사립명정학교에 대한 자료들을 관련 후속학교인 청룡초등학교와 금정중학교에서 발굴 수집한 것은 한국 근대 불교사 연구에 중요한 의미가 있다. 한국농어촌공사 칠곡지사에서 수집한 사료는 상당하다. 한국농촌공사는 경남지역에 경남 본부와 13개 지사를 개설하고 있다. 13개 지사가 인근 지역을 통합한 일부 지역을 제외하고는 경상남도 전역에 걸쳐 군 단위로 소재하고 있다. 2016년 국사편찬위원회의 지역사 자료조사 및 수집 사업의 일환으로 경상남도 합천군 16개 면의 농지개혁 관련 기록을 집중적으로 수집하였다.

국사편찬위원회 2001년 수집 지원 사업의 하나로 간접수집하였다. 수집 지원 사업으로 이루어진 김광식 수집 대구 경북 지역 고문서 자료이다. 3) 근대 사찰의 경제관계 관련자료 수집 일제시기 사찰관련 사회경제사 연구는 거의 불모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4. 근대 묘지 관련 자료 우리나라의 묘지에 관한 풍습은 조선총독부가 1912년 ‘묘지․ 본 연구에서 자료 조사․ 하지만 그가 남긴 일기 등의 자료, 수 많은 한글 역경화 사업 원고 등은 한국 근현대 불교사의 새로운 면모를 보여줄 수 있는 새로운 사료의 발굴이라고 할 수 있다. 4) 근현대 불교 및 교육사 관련 희귀 사진자료 수집 최근 한국 근현대사 연구에서는 사진자료들이 가지는 사료적 가치가 중요시 되고 있다. 특히 경화회 자료조사는 한국 현대사회에 있어 자발적 농민운동의 역사적 의미를 파악할 수 있는 가치를 지닌다. 광무 10년(1906년) 4월 한국 불교계 최초의 근대학교인 명진학교(明進學校) 가 서울에 설립된 직후 부산경남지역 전통 사찰들도 근대학교를 개설하였다. 15 직후 우여곡절을 겪으며 창립된 조선학술원의 전후 사정, 재건파 조선공산당의 결집 과정, 친일파에 대한 여운형의 대응 양태, 모스크바삼상회의 관련 오보와 이에 대한 민족건양회의 대응 등에 대한 서술이 그것이다. 또 청강에 대한 규정, 그리고 강독이 끝난 후 白鹿洞規ㆍ學校模範, 그리고 御製兩賢傳心錄序를 반드시 읽도록 하고 있다. 5) 講 儀 講儀ㆍ相揖禮笏記ㆍ白鹿洞規ㆍ藍田鄕約에 대해 기재하고 있다.

이어 白鹿洞規의 五敎之目, 학문을 하는 순서, 修身ㆍ處事ㆍ接物의 방법에 대해 기재하였다. 전답안의 작성방식은 전답소재지ㆍ면적ㆍ字號ㆍ地番, 그리고 用途를 기재하였다. 이어서 신해(1851) 3월 20일 丹城鄕校道會時到記가 첨부되어 있는데 丹城鄕校道會時 참석자의 이름과 거주지를 기재하였다. 그는 대과에 급제한 이후 상경하여 南署 會賢坊 會洞契 會洞에서 거주하다가 1913년 8월 18일(음력)에 작고하였다.講이 끝나면 역시 洞規ㆍ呂約 및 學規를 읽으며 강이 모두 끝난 후 음식 및 휴게시 취해야할 揖禮에 대해 기재하고 있다. 이 두 가문은 洞契를 통하여 결속을 다지고 義士ㆍ養士契의 운영을 통하여 후손들의 학업을 지원하였으며 항상 科擧에 관심을 갖고 자손들로 하여금 科試에 응하도록 독려하고 있었다. 강에 불참한 사람에 대해서는 주의를 주고 두 번 불참하면 黜座시키도록 하는 내용도 보인다.